일자리(Job) 시대의 종말
Tech Walk에서 들은 이야기
어제는 오랫만에 애들레이드 Bonython Park에서 열린 Tech Walk 모임에 나갔다. IT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산책도 하는 행사인데 주니어, 학생들에게 매우 friendly 한 행사다 (심지어 Pet도 함께 참여가능하다 하하.) 도중 비가 미친듯이 쏟아져서 중간에 해산의 위기를 세번정도 넘기고 코스를 완주? 했다.
자연스럽게 IT 일자리 시장에 대해서 대화가 많이 오가는데 대부분 개발자들의 최근 AI에 대한 심리적 태도는 보통 아래와 같다.
- AI 때문에 요새 일자리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
- 그러면서도 AI의 멋진 기술 구현을 이것저것 해봤고 이 언어와 프레임워크를 다뤘다.
- 개발의 맛이 사라졌다. 예전에 알고리즘을 직접 구현하고 코드를 직접 타이핑하던 손맛이 그립다.
나는 이들의 고통이 이해가 된다. 특히 나와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을 자주 만나 이야기할때 더욱 그렇다. 나는 그저 운좋게 나같은 경험 없는 유학생을 편견없이 받아준 고마운 회사에서 개발자라는 title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는 운좋은 초급 엔지니어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나는 얼마전에 본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 수가 없다〉의 구범모 (이성민 배우)가 떠오른다.
“나는 25년간 종이밥을 먹고 산 사람이야, 나는 엔지니어라고!!”
— 〈어쩔수가없다〉, 구범모 (이성민 배우)
Job이 아닌 Work의 시대
시대가 변했다. 이제는 정말 스스로를 고용해야만 하는 시대다. 2000년대 개인 컴퓨터의 대중화 이후로, 평생 직장, 평생 직업의 개념이 사라지고 모두가 프리랜서의 마인드를 가지고 일해야하는 시대의 바람은 원래 불어왔다고 하지만, AI라는 홍수는 개발자들 덮쳐 정말 말그대로 우리 모두를 휩쓸고 지나갔다.
그래서 나는 반복되는 위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정말 어쩔 수 없지만 이제는 Job을 찾는 시대는 없고, Work을 찾는 시대가 왔다.
(이는 고용 여부와 상관없이, 직장에서도 동일하다)
엔지니어로서 기술에 대한 자부심과, AI에 대한 두려움, 선망 모두 중요하지만 결국 우리는 세상에서 어떤 pain point를 찾고 해결했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본인의 기술을 중점으로 뽐내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 그래서 실질적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지?
- LLM + RAG 를 웹 어플리케이션에 연동해서 자동화를 해냈다는데, 그게 본인이 납득할 만큼의 수준의 엔드 유저 만족도로 이어졌는지?
- AI가 서포트 챗봇에 도움이 된다는데, 그럼 본인은 실제 사용하는 서비스 중 만족스럽게 써본적이 있는지?
- 어떤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했는데 왜 개발하고 싶었으며, 무엇이 문제였었는지?
- 가장 중요한건, 결과적으로 그 해결 과정에서 무엇이 의외였고 그것이 재미있었는지? 재미가 있었다면 어떤 점에서 흥미가 일어났는지?
등의 대화 없이 AI가 뭐고 프레임워크가 어떻고 저렇고의 대화를 들을때는 나는 이 엔지니어의 동력은 뭔지 궁금하다.
정말 변했다. 이제 개발자의 시대는 갔고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시대가 왔다.
아이패드 1세대가 주는 교훈
내가 하는 말이 공감이 안되는 개발자라면, 쉬운 예시 하나만 더 들어보겠다.
스티브잡스는 2010년 아이패드 1세대를 공개했다.

Photo: matt buchanan,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아이패드 1세대는 2세대와 비교했을때, 여러모로 허접한 하드웨어였다. 당신이 자부심있는 애플 내부 정통 엔지니어였다면 방방뛰었을 거다.
| 아이패드 1세대 | 아이패드 2세대 | |
|---|---|---|
| 카메라 | 없음 | 전·후면 탑재 |
| 메모리 | 256MB | 512MB |
| 두께 | 1.3cm | 0.88cm |
| 무게 | 680g | 601g |
| 프로세서 | Apple A4 | Apple A5 (최대 cpu 2배, gpu 9배 성능 향상) |
| 최종 지원 iOS | iOS 5 | iOS 9 |
만약에 출시를 일년 미루거나, 가격을 몇백달러를 더 받아서, 메모리를 올렸더라면, 카메라를 탑재했다면, 경량화를 이뤘다면, 최소 5년을 사용할 완성도의 훨씬 더 좋은 완성도를 가진 기기가 되었을것이다. (실제로 이 기기는 메모리문제로 iOS 추가 업데이트를 딱 일년정도밖에, iOS 5 까지밖에 못 받았다).
대신 스티브 잡스는 시장의 예상가격 999달러를 반으로 접어 단돈 499달러에 출시했다.
애플은 덕분에 빠르게 태블릿 pc 시장을 형성했고, 직후 훨씬 얇고, 가볍고, 빠르고, 전후면 카메라를 탑재한 명작, 아이패드 2세대를 일년만에 출시한다. 이 기기는 사용성도 좋고 좋은 성능에 iOS 9까지도 업데이트 지원받은 전설적인 기기다.
스티브잡스는 이미 엔지니어링적으로 아름답고 비싸서 출시시기를 놓친 기기를 실패해봤다. 빠르게, 접근 가능한 가격으로 소비자시장을 장악하지 못하면 애초에 다음번이란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실리콘 밸리 성공 회사는 이 공식을 따른다. 오늘날의 실리콘 밸리 회사들은 이제는 누구나 의심없이 따르는 개발의 선두주자지만, 이들의 DNA는 모두 Richard Gabriel (MIT 출신 소프트웨어 철학자)의 Worse is Better 접근에서 시작되었다.
최근들어 AI 토큰 사용을 미친듯이 쏟아부어 블랙박스에 가까운 접근으로 개발하고 있다는 실리콘 밸리의 기업들이 이런 정신나간? 접근을 하는 이유도, 결국 이런 DNA를 가진 곳이기 때문이다. 기술의 아름다움이나 몇년 뒤의 확장성 걱정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지금의 현존하는 문제만 소비자의 눈에 맞춰 해결해나가면 된다. 그렇게 하면 더 좋은, 우아한 제품을 단계적으로 만들어갈 기회 있기 때문이다.
완벽한 제품을 만들지 말고 부숴질 제품을 만들어라. 다시 의심하고 어떻게 부숴뜨릴지 고민해서 자신있는 제품을 만든다.